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8)
"이 글은 당당뉴스(DangDang News)에 공식 기고된 목사님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 매체사: 당당뉴스 (The DangDang News)
- 발행일: 2011-01-25
- 필자: 김기천 목사 (Rev. Kee Cheon Kim)
📜 목사님 원고 전문 (Manuscript)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8)
업데이트 2011.01.25 13:33
익투스트래블190423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8)"
4.2.2.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신관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신(神)도 전통 기독교에서 가르친 하나님과 다르다. 영지주의에서는 신을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첫째로, 영지주의자들은 신을 “모나드”(Monad)라고 부른다. “모나드”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 즉 ‘단자’(單子) 또는 ‘원소’(元素)란 말이다. 피타고라스 학자들은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것으로 만물을 이루고 있는 근원을 “모나드”라고 가르쳤다. 학자들은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모나드가 단순히 피타고라스학파들의 가르침에서 왔다고 단정한다.
그런데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주장하는 단자론과 유사한 것을 인도 육파 철학 가운데 바이세쉬카(Vaisesika)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바이세쉬카 학파의 카나다는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자꾸 나누다보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일정한 수의 원소들(Paramanus)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세상은 물, 불, 흙, 공기 등 네 가지 요소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인도의 카나다는 물질세계는 다섯 개의 요소(Bhuta)들 즉 물(Apa), 불(Agni), 흙(Prithvi), 공기(Maya), 에테르(Akasha)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힌두 사상처럼 인간 영혼의 윤회사상을 믿으며, 인생의 최상의 단계는 순수하게 명상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고기를 먹지 않는 생활을 했다.
여기서 논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힌두사상과 피타고라스학파 간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은 영지주의자들이 신을 모나드 즉 단자라고 부른 것도 그 뿌리는 힌두종교에 있다고 본다.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용어를 신이라고 부른다. 기독교 경전에서 “에온”(aijwvn)은 ‘영원’ 또는 ‘세대, 시기’ 등 시간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또한 “아르케”(hJ ajrchv)란 단어도 ‘시작, 태초’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은 영원한 신적 존재들을 “에온”(aijwvn)이이라고 부른다. 예수도 하나의 에온이다. 최고의 절대적인 신은 ‘완전한 에온’이란 의미를 가진 희랍어로 “아이온 텔로스”(Aijwvn tevleo")라고 부른다. 그 뿐 아니라 이 절대적인 최고의 신을 “아르케”(hJ ajrchv)라고 부르기도 하고 ‘태초 이전’이란 의미의 “프로아르케”(Proarchv)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대체 기독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가르침은 어디서 온 것인가? 우리는 이런 가르침을 힌두 경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힌두 사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보면 최고의 절대 신인 크리슈나(Krishna)가 10장 30절에서 “나는 시간이다”, 32절에서 “나는 만물의 태초이다”, 33절에서 “나는 소멸되지 않는 시간이다”, 11장 32절에서 “나는 온 세상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온 세상의 강한 파괴자인 시간이다” 라고 한다. 영지주의에서 시간을 신격화시킨 사상은 바로 힌두 사상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4.2.3.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세계관
영지주의 신화를 보면 ‘지혜’라는 뜻을 가진 소피아는 데미우르고스의 어머니이며 ‘충만’이란 뜻을 가진 플레로마의 일부분이다. 소피아는 신의 동의 없이 플레로마에서 떨어져 나온 어떤 것을 창조하기를 원했다. 이런 소피아의 잘못된 창조행위로 말미암아 괴물 같은 데미우르고스가 탄생했다. 소피아는 그를 구름으로 감싸서 그를 위한 보좌를 만들어 주었다. 데미우르고스는 그의 어머니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보다 뛰어난 실체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만이 홀로 존재하는 최고의 신으로 착각했다.
데미우르고스는 그의 모든 능력의 근원인 어머니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무지함 속에서 플레로마 세계와 닮은 물질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면서 물질세계인 만물을 창조한 것이다. 데미우르고스 안에 들어 있던 소피아의 능력이 물질세계에 갇혀있는 인간의 몸 안에 감추어졌다. 인간은 몸 안에 감추어진 이 소피아의 능력 즉 불꽃을 깨닫고 그 불꽃의 원초적인 근원인 영적인 실체들이 충만한 플레로마로 되돌아가야 한다.
데미우르고스가 무지함 가운데 만물을 창조할 때, 구원자 그리스도가 은밀하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데미우르고스조차 놀랄 정도로 창조된 우주는 거의 완벽했다. 그럼으로 불구하고 약간 불완전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데미우르고스는 후회했다. 그는 메시아를 보내서 이 불완전한 것을 고치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알아차린 구속자 예수가 이 메시아와 결합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것이다.
이 땅의 인간들은 물질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으로 나뉜다. 순전히 영적인 사람만이 데미우르고스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되어 구속자 예수와 그의 부인 아카모스(Achamoth)와 결합해서 몸과 혼의 껍질을 벗고 플레로마로 들어간다.
영지주의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완전한 절대신(Monad) 또는 절대 에온(Aijwvn tevleo")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 절대신은 보이지도 않고, 영원하며, 태어나지도 않고, 헤아릴 수 없이 돌아가는 세월의 순환 속에서 심오한 침묵과 고요함 가운데 있다. 이 절대신이 있는 천상의 영역은 그 신의 모든 능력과 신의 영광 즉 빛으로 충만한 “플레로마”(Plhvrwma)이다. 이곳에는 신적 존재인 “소피아”(sofiva), “에온”(aijwvn)들, “아르콘”(a[rcwn)들이 있다. 이런 신적 존재들은 플레로마로부터 방출되어 나온 것들이다. 물론 창조의 신 “데미우르고스”(dhmiourgov") 역시 플레로마에서 나왔다.
영지주의 세계관에서 분명한 것은 신의 이중 개념이다. 이해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절대신이 있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 데미우르고스가 있다. 이런 구조는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에 근거한 기독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에서 만물을 창조한 신을 데미우르고스라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열등한 신이란 말이다. 극단적으로 가면 창조주의 말씀이 기록된 구약은 별 볼 일없는 말씀이고 신약에서도 영에 관해서 많이 기록된 바울서신이나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게 기독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지주의 세계관을 힌두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힌두교 육파철학(六派哲學)에서 가장 오래된 상키야(Samkhya) 학파의 가르침을 보면 우주는 두 개의 실체 “푸루샤”(Purusa, 純粹情神)와 “프라크리티”(Prakriti, 物的本質)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푸루샤는 말로 형용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는, 절대 독립적인 존재이다. 푸루샤의 본질은 순수한 지식, 지혜, 생각이다. 지혜의 빛은 푸루샤로부터 방출된다. 프라크리티는 우주 만물을 만들어내는 최초의 원인이며 무의식과 무지의 원리이다. 이것은 “삿바”(Sattva)와 “라자스”(Rajas)와 “타마스”(Tamas) 등의 세 가지 특질로 구성되는데 이로부터 우주 만물이 만들어진다.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절대신이나 힌두종교에서 푸루샤가 유사하고 물질 세상을 창조한 무지의 신 데미우르고스나 힌두종교에 무지의 원리인 프라크리티가 비슷하다. 학자들은 “데미우르고스”란 이름은 기원전 360년경에 기록되었다는 플라톤의 『티메우스』(Timaeus)[이 책은 소크라테스, 티메우스, 헤르모크라테스(Hermocrates), 크리티아스(Critias)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주로 티메우스의 독백을 내용으로 한다. 내용을 보면, 데미우르고스는 이전에는 혼돈과 무질서 했던 우주를 완전한 세계의 모양을 따라서 오늘날 같은 세상으로 창조해 놓았다.]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이 플라톤 사상을 혼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티메우스』에서 데미우르고스는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무지의 신, 무의식의 신이 아니다. 오히려 영지주의의 데미우르고스는 인간을 무지에 빠뜨려 물질 세상 속에 속박시켜 놓은 힌두종교의 프라크리티에 가깝다.
영주주의 가르침을 보면 인간 안에 지혜의 불꽃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영적인 불꽃은 인간의 기원이 물질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세계인 플레로마에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또한 이 불꽃은 인간이 물질계를 벗어나서 플레로마로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영적인 지혜를 깨달음(gnw'si")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이렇게 깨달은 사람을 “프뉴마티코스”(pneumatikov")라고 부른다. 당연히 살아있는 동안 이런 영적인 깨달음을 얻은 프뉴마티코스가 될 수 있다. 힌두사상을 보면 인간에게는 영원하며 절대적인 순수정신 푸루샤로부터 온 지혜, 지식, 깨달음이 있다. 이 깨달음은 푸루샤와 프라크리티를 분별하는 지혜(分別智, Buddhi)이다. 이 분별지혜를 통해서 프라크리티가 만들어 놓은 무지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 순수정신 또는 순수지혜를 구속하고 있는 물질로 된 몸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은 목샤(Moksa) 즉 해탈할 수 있게 된다. 살아 있는 동안 해탈한 사람을 “지반묵티”(Jivanmukti)라고 하고 죽은 후에 해탈하는 사람을 “비데하묵티”(Videhamukti)라고 가르친다. 영지주의나 힌두사상이나 지혜를 강조하고 그 지혜를 통하여 인간을 속박하고 있다는 이 세상을 벗어나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4.2.4. 영지주의 기도와 힌두종교 만트라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 종교 예식들을 개발했다. 많은 영지주의 본문들이 주문과 같은 패스워드(Password)들을 제시한다. 이 패스워드에 의해서 영혼은 아르콘(a[rcwn)들 즉 세상의 지배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영혼이 천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아르콘들 때문에 세상에 내려왔던 영혼의 불꽃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둠의 세력이 세워놓은 장애물들을 통과하기 위해서 인간은 패스워드를 알아야 한다. 천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패스워드는 주로 영혼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도마복음』 50장이 하나의 공식을 제시한다.
만일 그들이 너희에게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그들에게 "우리는 빛에서 왔다고 ..." 말하라. 만일 그들이 너희에게 "그 빛이 너희냐?"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빛의 아들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계신 아버지의 선택받은 자들이다"라고 말하라. 만일 그들이 너희에게 "너희 안에 있는 너희 아버지의 징표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그들에게 "그것은 움직임과 평안함이다"라고 말하라.
이런 구절을 주문처럼 암송하면 영혼이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을 돕는다. 이것은 마치 노래를 반복함으로 명상을 돕는 인도의 만트라(Mantra)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인도 브라만들도 신비스런 지식의 비밀을 깨닫기 위해서 자신들의 언어로 신을 부르며 만트라 즉 기도문을 노래했다. 다음은 히폴리투스(Hyppolytus, 170-236)의 글이다.
이들은 신을 빛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보는 그런 빛이 아니고, 태양이나 불과 같은 그런 빛도 아니다. 그 빛은 신이 그들에게 준 말씀이다. 그런데 그 말씀은 분명한 음절로 표현되는 말이 아니다. 지식의 신비스러운 비밀들을 깨닫기 위해서 지혜자가 갖추어야 하는 말씀이다. 그들의 신이라고 하는 이 빛은 말씀인데, 그 말씀은 오직 브라만들만이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들만이 영혼을 근본적으로 덮고 있는 모든 헛된 말들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을 경멸하며, 항상 그들의 언어로 빛을 그들의 신이라고 부르며, 찬양을 올려 보낸다.[The Writings of the Fathers down to A.D. 325. vol. V, trans. by The Rev.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03), 21.]
영지주의 문헌들 가운데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도문이 있다.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도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주문에 가깝다. 영지주의자들만 알 수 있는 만트라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낙하마디 항아리에 들어 있던 문헌 가운데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로 올라가기 위한 기도문』 중에 나오는 글이다.
자카타조
아
오오 에에
오오오 에에에
오오오오 에에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 우우우우우우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자조조트
(낙하마디 문헌 NHC VI, 6, 56)
다음은 대승불교에서 널리 경배하는 팔을 네게 가지고 있는 관세음보살 만트라이다. 6개의 산스크리트어 글자로 된 만트라로서 글자 하나하나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옴 마 니 반 메 훔
옴 마 니 반 메 훔
옴 마 니 반 메 훔
옴 마 니 반 메 훔
옴 마 니 반 메 훔
옴 마 니 반 메 훔
(관세음보살 만트라)
영지주의자들은 노래하듯 기도문을 암송한다. 인도종교인들도 노래하듯 만트라를 암송한다. 이런 암송은 신비한 지혜를 깨닫도록 돕는다. 영지주의자들은 주문과 같은 기도문을 암송하면서 몸 안에 갇혀있던 영혼의 불꽃이 물질계를 벗어나서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움직임과 안식을 경험한다. 영지주의 문헌들이 가지고 있는 기도문들, 찬양가사들의 역할과 인도종교의 만트라의 역할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발췌: 큐복음 상권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325-334페이지)
🏛️ 최고 신학자의 심층 분석 및 현대적 해석
도마복음 비평: 영지주의와 힌두교 신관의 심층 비교 분석
1. 핵심 요약
김기천 목사님의 글은 도마복음이 신약 정경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유를 영지주의 신관과 세계관의 관점에서 설명하며, 이들이 힌두교 사상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유일신관과 달리 절대적인 초월신(모나드)과 물질 세계를 창조한 무지한 데미우르고스를 구분하며, 이는 힌두교의 푸루샤(순수 정신)와 프라크리티(물질적 본질)의 이원론적 구조와 유사합니다. 결국, 도마복음은 기독교적 토대 위에 힌두교적 요소가 혼합된 영지주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어 정경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 글의 핵심 논지입니다.
2. 신학적 인사이트
2.1. 영지주의 신관의 역사적, 철학적 맥락
김기천 목사님은 영지주의 신관의 특징을 "모나드," "아이온," "아르케"와 같은 용어를 통해 설명하며, 이것이 전통적인 기독교 신관과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영지주의 신관은 단순한 철학적 사변의 결과가 아니라, 당시 헬레니즘 세계의 다양한 종교적, 철학적 조류가 혼합된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 플라톤주의의 영향: 영지주의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영향을 받아, 완전하고 불변하는 이상적인 세계(플레로마)와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물질 세계를 구분합니다. 모나드는 플라톤의 최고선(the Good) 개념과 유사하게,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궁극적인 실재로 여겨집니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등장하는 데미우르고스는 우주를 창조한 신적 존재이지만, 영지주의에서는 무지하고 열등한 존재로 격하됩니다.
- 신플라톤주의의 발전: 3세기 플로티노스에 의해 체계화된 신플라톤주의는 '일자'(The One)라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를 강조합니다. 일자는 모든 것의 근원이지만, 스스로는 어떠한 규정도 가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영지주의의 모나드는 신플라톤주의의 일자와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세상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간접적으로만 영향을 미칩니다.
- 유대교 묵시문학의 변형: 영지주의는 유대교 묵시문학의 영향을 받아, 세상을 악한 세력의 지배하에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물질 세계에 가두는 악한 존재로 간주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영지주의가 유대교 전통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신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2. 영지주의와 힌두교의 유사성: 더욱 깊은 고찰
김기천 목사님은 영지주의 신관과 세계관이 힌두교 사상, 특히 상키야 철학과 유사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 이원론적 세계관: 영지주의는 플레로마(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를 뚜렷하게 구분하며,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적인 불꽃(지혜)을 통해 플레로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상키야 철학의 푸루샤(순수 정신)와 프라크리티(물질적 본질)의 이원론과 유사합니다. 푸루샤는 순수한 의식이며, 프라크리티는 모든 물질적인 현상의 근원입니다. 인간은 무지(아비디아) 때문에 푸루샤와 프라크리티를 구분하지 못하고 물질 세계에 갇혀 살지만, 바른 지혜(비베카)를 통해 해탈(모크샤)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무지의 문제: 영지주의에서 데미우르고스는 무지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세계를 창조합니다. 힌두교에서도 무지는 인간을 윤회의 굴레에 빠뜨리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영지주의자와 힌두교도 모두 지혜(그노시스 또는 비베카)를 통해 무지를 극복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 만트라의 역할: 김기천 목사님은 영지주의의 기도문과 힌두교의 만트라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지적합니다. 만트라는 특정한 음절이나 구절을 반복적으로 암송함으로써 정신을 집중하고 초월적인 경험을 얻는 데 사용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주문과 같은 기도문을 통해 영혼이 물질 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영지주의와 힌두교의 유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 단순화의 오류: 영지주의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사상 체계이며, 힌두교 역시 여러 학파와 전통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종교입니다. 두 사상을 단순히 비교하여 동일시하는 것은 각 사상의 고유한 특징을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 역사적 관계의 불확실성: 영지주의와 힌두교 간의 역사적 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두 사상 간의 유사성은 공통적인 철학적, 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습니다.
2.3. 도마복음의 정경성 문제
김기천 목사님은 도마복음이 영지주의적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약 정경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도마복음은 기존의 정경 복음서와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보입니다.
- 예수의 어록: 도마복음은 예수의 말씀(Logia)만을 모아놓은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예수의 행적이나 수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도마복음이 역사적 예수보다 영적인 가르침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 비유의 해석: 도마복음은 예수의 비유를 독특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겨자씨 비유는 내면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됩니다.
- 여성의 역할: 도마복음은 여성의 영적인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인 마리아(막달라 마리아)를 특별한 존재로 묘사하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영적 지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도마복음의 정경성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 초기 기독교의 다양성: 도마복음은 2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정경 복음서와 거의 같은 시기입니다. 당시 기독교는 다양한 사상과 신앙 형태가 공존했으며, 도마복음은 이러한 다양성을 반영하는 문서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 영지주의의 정의: 영지주의는 통일된 교리 체계를 가진 종교가 아니라, 다양한 사상과 신앙 형태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도마복음에 나타나는 영지주의적 요소가 반드시 이단적인 것은 아니며, 초기 기독교 신앙의 한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 정경 형성 과정: 신약 정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다양한 기준과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도마복음이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며, 반드시 그 내용이 이단적이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론
김기천 목사님의 글은 도마복음의 신학적 특징을 분석하고, 영지주의와 힌두교 사상과의 연관성을 제시함으로써 도마복음의 정경성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러한 분석은 도마복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지만, 영지주의와 힌두교의 복잡성, 초기 기독교의 다양성, 정경 형성 과정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